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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누라가 죽으면 화장실 가서 웃는다’는 시시껄렁한 농담이 있었지요. 30대 땐 친구들과 그런 농담하며 낄낄거리곤 했는데…. 막상 현실로 닥쳐 봐요. 얼마나 가혹한 일인지 안 겪어 보곤 상상조차 못합니다.”》

3년 전 부인과 사별한 안모(57·자영업) 씨. 펜팔로 만난 부인과 1남 1녀를 두고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노후를 차근차근 준비하면서 화목한 가정을 꾸려 왔다. 그런데 이제 발 좀 뻗고 살 만하다 싶었더니 부인이 폐암에 걸려 갑작스레 세상을 떴다. 아들은 지난해 결혼했고 지금은 딸과 함께 살고 있다.

“처음엔 컴퓨터도 배우고 주말에 몰두할게 필요해 바다낚시도 쫓아다니고 했는데 이젠 하고 싶은 게 없어요. 집에 오면 꼼짝도 안 해요. 그냥 멍하니 있죠.”

실제로 안 씨 아파트(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의 베란다 창엔 먼지가 뿌옇게 쌓여 있었다.

“예전에는 아파트 아래서 보면 우리 창문이 제일 깨끗하다고 그랬는데….”

밥하고 청소하는 등의 살림은 대충 적응을 했고 낮에는 일에 몰두하지만, 퇴근 후 텅 빈 방에 불을 켰을 때 눈에 들어오는 사진틀을 보면 꾹꾹 담아둔 한탄이 튀어나온다.

“이 사람아, 일 나갔다 왔는데 말도 없나. 만날 말도 없이 쳐다보기만 하고….”

안 씨는 “영화나 소설에서 죽은 배우자의 사진을 보며 넋두리를 늘어놓는 장면이 나오면 너무 작위적이라며 비웃곤 했다”며 “닥쳐 보지 않으면 모른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우리 사회에서 사별, 이혼 등의 사유로 1인 가구주로 등록된 40∼59세 남자는 24만9000명이다(통계청 2000년 인구센서스). 여기에 수년간 급증하고 있는 기러기 아빠, 배우자 없이 자녀나 부모와 함께 사는 경우를 포함할 경우 40, 50대 외기러기 남자는 100만 명을 훌쩍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혼자 살게 된 사유는 다양하지만 공통점은 갑작스레 닥친 독신생활에 심각한 부적응 현상을 보인다는 점이다. 가부장적 문화에서 자란 탓에 일상생활에서 부인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던 데다 사회적으로도 독신 중장년을 위한 인프라가 부족하기 때문.

지난해 ‘중년 남성의 배우자 사별 경험’이라는 석사 논문을 쓴 박경복(朴景福) 한양대 임상간호정보대학원 호스피스 연구원은 “부인이 짧은 기간의 투병 끝에 사별한 남성들의 정신적 고통이 특히 심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사별 뒤 여성은 주로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하는 반면 남성들은 의식주는 물론 자녀 교육 등 전반적인 문제에 걸쳐 어려움을 호소했다”고 말했다.

한국의 많은 중년남자는 자녀 교육을 비롯한 가정 대소사의 부담을 부인에게 떠넘겨 왔으며, 직장을 제외하곤 가족 이외에 특별한 대인 관계를 맺지 않은 채 살아왔다.

사별의 정신적 충격에서 서서히 벗어난 남성들은 부인이 수행하던 역할에 대한 어려움을 느끼면서 ‘제2의 충격’을 경험하게 된다. 직장에서마저 은퇴하면 심신이 크게 상하는 사례가 많다는 것.

4년 전 부인과 사별한 박모(48) 씨는 “아내가 세상을 떠난 뒤 남은 사람이라도 살아야겠다고 마음을 다져 먹었는데 막상 쉽지 않아요. 특히 애들이 내 맘대로 안돼요. 집사람 있을 땐 내가 악역 하고 아내가 중재 역할을 했는데 지금은 대화가 끊겼어요”라고 하소연했다.

늘어나는 ‘황혼 이혼’도 가부장적 생활에 젖어온 중·노년 남자들을 울상 짓게 만들고 있다.

6월 통계청이 발표한 ‘1970년 이후 혼인·이혼 주요 특성 변동 추이’에 따르면 지난해 이혼한 부부 10쌍 중 2쌍이 황혼 이혼이었다. 특히 황혼 이혼 청구자의 80%가 여성이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조경애(曺瓊愛) 상담위원은 “황혼 이혼 문제로 상담하는 비율은 여성이 7 대 3으로 많지만 남성이 점차 늘고 있다”며 “‘자기들끼리만 밥을 먹는다’ ‘아이들이 엄마와만 친하게 지낸다’는 등 주로 소외감을 호소하는 남성이 많다”고 밝혔다.

수년 전 사업에 실패한 박모(48) 씨의 경우 아내의 이혼 요구에 벼랑까지 몰린 처지다. 젊은 시절 사업을 핑계로 다소 방탕한 생활을 했던 그는 요즘은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가정파탄은 막아야 한다”는 논리로 버티고 있다. 남은 돈도 없고 이혼을 해도 당장 나가 살 곳이 없다는 것이 속사정이다. 직장에 다니는 아내가 누군가를 사귀는 눈치지만 그렇다고 따지고 들기도 무섭다. 얼마 전에는 이혼 문제로 다투다 아내가 가슴을 할퀴는 바람에 상처를 입었지만 할 말이 없었다. 자업자득인 측면도 있고, 폭력을 쓰다 이혼 사유가 될까 겁이 났기 때문. 그나마 아내가 정식으로 이혼 소송을 내지 않는 것이 다행이라는 심정이다.

자녀 교육을 위해 홀아비 생활을 택한 기러기 아빠들의 하루하루도 회색빛이긴 마찬가지다. 한해 5000만 원 이상을 미국 버지니아 주에 있는 아내와 아이에게 보내고 있는 김모(43) 씨는 “힘들어 죽겠다며 왜 빨리 돈을 보내지 않느냐는 아내의 짜증 섞인 목소리를 듣다 보면 아내의 전화가 기다려지는 게 아니라 두려워질 때도 있다”고 말했다.

“기러기 생활 3년 만에 등산 조깅 서예 등 경험하지 않은 취미활동이 거의 없어요. 그래도 가족이 곁에 없다는 공허함을 메울 수가 없어요. 더욱이 이 생활의 끝이 안 보인다는 생각을 하면 앞이 캄캄해집니다. 아직 한창 나이에 참아야 하는 성적인 고통도 큽니다. 창피한 말이지만 스스로 발정 난 동물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내가 택한 일이지만 도대체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해답이 없는 것 같아요.”

1984년부터 호스피스로 활동해 온 한양대 김분한(金芬漢) 교수는 “미국의 일부 주에서는 갑자기 혼자된 중·노년을 위한 정신 상담을 법으로 정하고 있고, 교회와 각종 사회단체에서는 이들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며 “우리도 홀로 사는 남성을 돕기 위한 사회적 시스템 구축과 함께 어려서부터 시대에 어울리는 아버지와 남편으로서의 역할 교육을 시켜줘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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